21살의 나이로 사회에 던져지다. (feat. IMF)
사회생활을 하게 된 건 대학 2학년을 앞둔, 21살 때였습니다. 그전부터 집안 상황을 어느 정도 알고 있었지만 아버지 사업이 이젠 더 이상 버틸 수 없는 상황이 됐고, 어머니가 잠시 휴학을 해야 할 것 같다고 하더군요. 곧 돌아올 거라 의심치 않았습니다. 관심은 있었지만 꼭 하고 싶었던 공부는 아니라서 선뜻 휴학하겠다고 했습니다. 그래도 당연히 곧 복학할 거라 생각했죠.
활발하고 자기 앞가림 잘하는 동생과 달리 내성적인걸 깔고 있던 저는 첫 직장도 지인의 소개로 입사했습니다. 첫 회사는 공예예술품들을 국내, 해외 전시하는 법인이었습니다. 회계파트 보조나 그 외 잡다한 것들을 해줄 만한 알바로 들어갔는데 잘 보였는지 일주일 만에 정직원으로 일하게 됐습니다. 그때는 농담 한마디 할 줄 모르고 항상 진지한 편이었는데, 그래서인지 일에 대해선 다들 잘한다, 열심히 한다는 얘길 많이 들었습니다.
일하는 곳에 계신분들은 평균 30~35세, 원장님이라고 불리시는 분은 60대. 학력도 능력도 좋은 사람들 사이에서 대학 졸업도 못하고 허드렛일을 하고 있는 제 자신이 점점 작아 보였습니다. 회계부서에 저보다 반년 이상 늦게 낙하산으로 들어온 대리가 잔고 맞춰야 한다고 천 몇백 원, 만몇 천 몇백 원 은행 가서 통장에 넣고 와라 시도 때도 없이 시켜서 참다 참다 하루에 한 번 정도 몰아서 다녀오면 안 되겠냐 얘기했다가 저 친구 퇴사시켜야 한다는 소리도 듣고 파란만장한 첫 직장생활을 시작했습니다.
일을 시작하고 한 3~4년을 내가 도대체 무슨일을 해야 하나 항상 고민을 했던 것 같습니다. 그냥 사무보조는 도저히 못 견디겠더군요. 그래서 그나마 관심이 있던 포토샵 학원을 다녔습니다. 그리고 그걸 이용해서 일할 수 있는 회사를 찾았습니다. 마침 전자출판 회사에서 E-BOOK 제작하는 알바를 채용하더군요. 다른 일로 가면 정직원으로 일할 수 있었지만 모험하기로 했습니다. 전자출판회사에 알바로 기본급 30만 원+인센티브(콘텐츠 제작)로 입사를 했습니다. E-BOOK 프로그램을 2개 사용했는데 오류가 참 많이 발생했습니다. 열심히 책을 만들었습니다. 일의 특성상 마감일도 있다보니 마감쯤에는 야근은 기본이고 정말 집에 들어가서 씻고 바로 출근하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제가 가져가는 아르바이트비가 일반 정직원 기본급보다 조금 더 받게 됐을 때 대표가 따로 부르더군요. 정직원으로 월급을 고정하면 어떻겠냐고요. 그리고 대표가 저를 찾는 일이 많아지면서 관리 팀장에게 미움을 받았습니다. 대표가 직접 저에게 했던 얘기가 아직도 생생히 기억이 납니다. "내가 00 팀장한테 들은 너와 내가 직접 대면한 네가 참 많이 다르네."
어떻게든 전문적인 일을 하고 싶었던 저는 포토샵으로 할 수 있는 또다른 일을 찾았습니다. 그리고 당시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온라인 쇼핑몰 회사에 문을 두드렸습니다. 웹디자이너를 뽑는다고 해서 일하게 됐는데, 열심히 하다 보니 카메라로 촬영도 하고 딜 관련 엠디랑 소통도 하고 사무실 허드렛일도 하고, 바쁠 땐 포장도 하고, 어느 날은 제품 사입도 하고 오만가지 일을 하게 됐습니다. 열심히 내 일에서 결과를 내자고 앞만 보고 달렸습니다.
의류 쇼핑몰에서 수십 벌의 옷을 스팀기로 다려서 하나하나 제품을 촬영하고 있는데 당시 회사 대표님의 누님이 저를 보고 그러더군요. "oo 씨~ 그렇게 열심히 해주지 마~. 쉬엄쉬엄 해. 그럴 필요 없어."라고. 당시 50대, 대학생 아들 둘이 있던 그분이 매번 저를 볼 때마다 저렇게 얘길 하셨던 게 기억이 납니다.
초중고를 지내오면서 어머니는 무엇이든 열심히, 하는일에서는 결과를 내야 하고 어른이 얘기한 것은 귀담아 두었다가 바로바로 해야 한다며 저를 키우셨습니다. 그래서인지 사회에 나와서도 나이가 있으신 분들께는 항상 이쁨을 받았던 것 같네요. 그렇게 저의 고졸, 중소기업의 직장생활이 시작됐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