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리 버티고 싶어도, 버티지 못하겠습니다.
월급을 위해 어쩔 수 없이 다니던 마지막 회사에서의 일입니다.
그 회사에서 약 8년을 다니면서 결혼하고 아이도 낳은 남자 과장이 있었습니다. 근속년이 꽤 되는데 저보다 직급이 낮더군요. 급여도 그다지 높지 않았습니다. 오래 일했던 인원들이 꽤 많았지만 거의 모두가 퇴사한 상황이었는데 그분은 계속 남아있더군요. 하루는 점심시간에 외부 한적한 카페에서 혼자만의 시간을 좀 갖으려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는데 그 분과 마주치게 됐습니다. 잠시 이런저런 얘기를 하며 건물 밖으로 나왔다가 식사도 같이 하게 되었죠. 회사와 육아 관련 얘기를 나누다 제가 한 가지 질문을 했습니다. "과장님, 어떻게 하면 한 회사에 그렇게 오래 있을 수 있어요?"
한 회사에서 8년이라니...... 제 나름 버텨보려고 노력해도 저는 회사,업무,환경이 고여있는 듯하다고 느껴지면 참지 못하고 이직을 했던 적이 많아서 너무 궁금했습니다. 아버지 세대도 아니고 저랑 비슷한 또래였는데 말이죠.
그 과장이 그러더군요. "한쪽 눈 감고, 한쪽귀 막고, 말은 반만 하면 돼요."
정말 듣자 마자, 그 말이 귀를 흘러 들어오는 순간! 더 이상의 표현은 없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더 물어볼 것도 없었습니다. 함께 걸으며 손뼉까지 치면서 웃었던 기억이 있네요.
살아있는 경험자의 노하우를 들었으니, 저도 한번 노력해 보려 애를 썼습니다. 하지만 업무에 제가 이리저리 불려 다닐 일이 많아지고 업무 속에 깊숙이 참여하게 되면 할수록 아무리 저 말을 가슴속에 새기고 있어도 더는 못 견디겠더군요. 그리고 제가 그렇게 노력해도, 아무리 노력해도 왜 어떤 사람들처럼 적당히 회사생활을 할 수 없는지 확실히 깨닫게 됐습니다.
20대 초반에 일을 시작해서 30대초반까지는 어떻게든 업무적인 능력과 스킬을 쌓으려 노력하느라 저를 주위를 돌아볼 여력이 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아이를 출산하고 바로 복귀한 회사에서 그동안 쉰만큼 저의 온 열정을 다해 팀을 이끌었습니다. 출산으로 입사 시에 58kg였던 몸무게가 퇴사할 땐 47kg이었거든요.
온 열정을 다 한 만큼, 어느날 갑자기 출근길에 지하철 계단에서 멈춰 버리고 말았습니다.
어느 출근길, 발이 떨어지지 않았다.
내 다리인데, 내 것이 아닌 듯. | 어느 날 출근길에 갑자기 모든 게 무의미하다는 생각이 들면서 지하철 계단에서 한 발자국도 걸어지지 않았다. 눈도 멍하니 한 곳만 바라보고 이었다. 정신도 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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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에 다니던 어떤 여성분의 유튜브를 본 적이 있습니다. 누구나 부러워하는 삼성에 들어갔고 숨도 쉴 수 없을 정도로 밀려오는 업무에 정신이 없을 때쯤 안면이 있는 여직원이 갑자기 사망했다는 얘길 듣게 됐다고 합니다. 그리고 점점 이러다 나도 저렇게 되는 게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면서 어느 날은 일을 하는데 갑자기 눈물이 나고, 어느 날은 자신도 모르게 신발을 짝짝이로 신고 나왔더라 했습니다. 공황 진단을 받은 그분은 회사를 그만뒀고 지금은 안정을 찾아가고 있다고 했습니다.
30대 초반, 저에게 첫 이상증상이 있고 그 이후로 다른 회사로 이직도 해보고, 아예 다른 업무 포지션으로 구직도 해봤습니다. 그리고 심지어는 일부러 많은 소리를 차단하고 내 할 일만 하면 좀 버틸 수 있으려나 싶어 이어폰도 껴봤습니다. 하지만 무엇을 어떻게 해봐도 버티기를 위한 직장생활은 한계가 있더군요.
오래 다니고 싶어 이어폰을 꼈습니다만,
귀가 나갔습니다. | 몇 번 방황의 시간(타업종, 부업 등등)을 뒤로하고 다시 회사로 돌아갔다. 돌아간 회사에서는 전체 팀장은 맡지 않기로 했다. 명확한 포지션보다는 내가 가지고 있는 기술 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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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경적인 몇가지를 바꾼다고 해서 근본 '나'라는 사람이 바뀐 것은 아니니까 말입니다. 저도 모르게 하루에도 12번 깊은 한숨을 내쉬면서 마음의 결심을 해야 할 때가 오는구나를 느꼈습니다. 정말 많은 생각들이 제 머릿속을 헤집어 놓고 있었습니다.
아무리 버티고 싶어도, 버티지 못할 것 같은 때가 있습니다.